결혼하고 몇 년 동안은 아이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언젠가 자연스럽게 찾아오겠지, 그렇게 느긋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 임신 소식이 들려와도 마음이 흔들리진 않았고, 조급함보다는 아직은 괜찮다는 여유가 더 컸죠. 그러다 작년 초 처음으로 임신을 계획하게 되면서, 삶의 작은 일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작년 초, 처음으로 진지하게 아이를 가져보자고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생각보다 금방 좋은 소식이 올 줄 알았어요. 제 생리 주기가 워낙 규칙적이어서 배란일도 대략 계산할 수 있었고, 그 시기를 중심으로 계획을 세우며 관계를 가졌죠. 하지만 몇 달을 시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배란 테스트기를 사용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는 앱으로 체크한 날과 테스트기를 함께 보며 날짜를 조율하게 되었죠.
그렇게 몇 달을 반복하다 보니 마음이 점점 지쳐갔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잠깐 쉬자’는 생각에 한동안은 아무 계획 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요.
그러다 저번 달, 배란일 다음날에 자연스럽게 관계를 가졌어요. 특별히 기대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배란 8일째가 되자 마음이 또다시 조심스럽게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그날부터 매일 아침 임신 테스트기를 꺼내 들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을 꼭 감고 결과를 기다리곤 했지만, 며칠을 내리 계속 음성만 나왔죠. 그 결과를 볼 때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했고, 매일 아침이 조용한 실망의 순간이 되었어요.
증상들도 평소 생리 전보다 조금 더 민감하게 다가왔어요. 배란 8일째, 배가 콕콕 쑤시는 듯한 통증이 시작됐어요. 아랫배가 묵직하고, 허리도 무거운 느낌이 들었죠.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증상들이 이날은 괜히 예민하게 느껴졌어요. 9일째는 두통이 정말 심했어요. 머리가 전체적으로 무겁고, 목 뒤까지 당기는 듯한 통증이 하루 종일 이어졌죠. 혹시라도 임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약은 전혀 먹지 않았어요. 약을 먹지 못하는 불편함보다 혹시라도 영향을 줄까 하는 걱정이 더 컸거든요. 10일째에는 소변을 볼 때 갈색 혈이 함께 나왔어요. 착상 증상일지도 모른다고, 또 한 번 기대해봤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어요. 11일째에는 생리통 같은 복통과 함께 팬티라이너가 젖을 정도로 갈색 출혈이 이어졌어요. 그리고 그 다음날, 결국 생리가 시작됐어요. 처음엔 갈색 피로 시작해 이틀째까지 이어졌고, 그제야 평소처럼 붉은 생리혈로 바뀌었죠.
그날 아침, 생리를 확인하는 순간까지 머릿속은 온통 복잡했어요. 평소보다 몸 상태도 더 예민해졌고, 감정도 오락가락했어요. 기대는 점점 커졌고, 동시에 실망에 대비하려는 마음도 뒤섞였죠. 생리를 확인하고 나서는 약을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도, 역시 이번에도 아니었구나 싶은 허무함이 밀려왔어요.
이 과정을 겪으면서 느낀 건, 임신을 준비하는 시간은 단순히 아이를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매달 반복되는 희망과 실망 속에서 나 자신을 다독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과 마음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어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정말 힘내시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기대하되 마음을 지키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만, 우리 각자의 속도로 잘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꼭 잊지 않았으면 해요. 저 역시 아직 그 과정 속에 있고, 언젠가 좋은 소식으로 이 시간을 돌아볼 수 있기를 조용히 바라고 있어요.
'Leben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리아힐퍼 거리에서 만난 특별한 달리기, Wings for Life World Run 2025 (8) | 2025.05.05 |
---|---|
중식의 풍미를 완성하는 비법 재료, 소흥주(Shaoxing Reiswein) (15) | 2025.04.29 |
TK Maxx, 득템의 설렘과 현실 사이 (7) | 2025.04.24 |
빈의 숨겨진 보물, Donaunixenbrunnen(도나우닉센 분수)를 찾아서 (4) | 2025.04.22 |
빈 Ottakring 플리마켓 방문 후기, 기대 vs 현실 (8) | 2025.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