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eben/오스트리아

자허토르테: 초콜릿 케이크의 역사와 분쟁

by StephinWien 2023. 12. 19.
반응형

자허토르테는 오스트리아의 전통 초콜릿 케이크로, 두 층의 초콜릿 스펀지 케이크 사이에 살구잼을 발라서 만들어지고, 초콜릿 글레이즈로 덮인 디저트다. 이 디저트의 역사와 법정 분쟁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갖고 있다.

 


기원
1832년, 오스트리아의 귀족인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후작이 중요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특별한 디저트를 만들라고 주방에 지시했다. 그런데 당시 주방장이 아프게 되어 그의 아들이자 당시 16세였던 프란츠 자허가 이 일을 맡게 되었다. 프란츠 자허는 살구 잼이 발라진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제공했고, 이 디저트는 자허토르테로 불리게 되었다. 케이크가 손님들에게 맛있었지만 프란츠는 처음에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프레스부르크와 부다페스트에서 몇 년을 보낸 뒤, 1848년에 빈으로 돌아와 고급 식품 가게와 와인 상점을 열었다. 그의 장남 에두아르트는 데멜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허토르테를 현재의 형태로 완성시켰다. 자허토르테는 먼저 데멜에서 제공되었으며, 그 후 에두아르트가 1876년에 설립한 호텔 자허에서도 판매되었고 빈의 대표적인 디저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분쟁
20세기 초, "원조 자허토르테"의 이름을 둘러싼 호텔 자허와 데멜 베이커리 간 법적인 분쟁이 발생했다. 1930년에는 에두아르트의 아내인 안나 자허가 사망하고, 4년 뒤에는 호텔 자허가 파산하게 되었다. 에두아르트의 아들은 데멜에서 취직하게 되고 "에두아르트 자허토르테"에 대한 독점 판매 권한을 허용했다. 1938년에는 호텔 자허를 인수한 새 주인이 호텔에서 자허토르테를 판매하면서 처음으로 의견 차이가 발생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연합국이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면서 이러한 분쟁은 잠잠해졌다. 1952년에는 "원조 자허토르테"라는 이름의 상표 권리를 둘러싸고 호텔 자허의 소유주가 데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7년 동안 양측은 자허토르테의 이름, 마가린 사용 등을 놓고 강력한 법적 전쟁을 벌였다. 결국 1963년에는 양 측이 법정 밖에서 화해를 이루어 "원조 자허토르테"라는 문구의 사용 권한은 호텔 자허에게, 데멜 베이커리는 "에드아르트의 자허토르테"라는 문구와 함께 특별한 인장을 사용하여 자허토르테를 팔게 되었다. 현재에 이르러 "자허토르테"는 이 두 곳에서 각자의 스타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오랜 역사와 다양한 변화를 거친 자허토르테는 오스트리아의 문화적 상징이기도 이다. 이 디저트는 단순히 맛있는 케이크가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행복한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다. 만약 당신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한다면, 호텔 자허 혹은 데멜에서 자허토르테를 한 조각 맛보는 것은 어떨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