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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ben/일상

빈의 골목이 살아났어요, 오타크링을 물들인 거리의 예술

by StephinWien 2025.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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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에서 조금만 오래 살다 보면, 익숙한 거리 위로 소소한 변화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요. 그중에서도 제가 참 좋아하는 산책 루트 중 하나는 바로 빈 16구, 오타크링(Ottakring)이에요. 번화가나 관광지와는 조금 다른, 일상과 예술이 나란히 흐르는 이 동네에서는 길을 걷다가 벽면 가득 그려진 대형 벽화를 만나게 되곤 해요.

 

이건 단순한 낙서도, 누군가의 장난도 아니에요. 오히려 이 벽화 하나하나에는 이 도시가 품은 이야기, 그리고 이곳을 방문한 예술가들의 시선이 담겨 있어요. 바로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스트리트 아트 페스티벌 ‘Calle Libre(까예 리브레)’의 흔적들이죠.

calle libre

‘Calle Libre’는 스페인어로 ‘자유로운 거리’라는 뜻이에요. 이 멋진 이름처럼, 이 페스티벌은 도시의 거리와 벽을 거대한 캔버스로 삼아 그래피티와 벽화를 통해 예술을 거리 위에 풀어내는 행사입니다. 2014년에 시작되어 매년 여름 빈의 여러 지역에서 열리고 있고, 지금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트리트 아트 페스티벌 중 하나로 자리잡았어요.

 

Calle Libre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멋있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 페스티벌의 핵심 목표는 스트리트 아트를 '도시 미학'의 일부로 바라보는 시선을 전하는 거예요. 낙서나 반항의 도구로만 여겨졌던 그래피티와 벽화가, 이제는 도시와 사람을 잇는 예술로 다시 해석되고 있는 것이죠.

 

각국에서 초청된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도시 공간을 해석하고, 사회적·생태적 변화에 대한 메시지를 벽에 남깁니다. 그런 점에서 Calle Libre는 단순한 미술 축제를 넘어, 거리 속의 소통과 변화, 그리고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행사라고 할 수 있어요.

calle libre

2023년은 Calle Libre의 10주년이 되는 해였어요. 그래서 이 의미 있는 해를 기념해 ‘DIEZ – Years of Transformation(10년의 변화)’이라는 주제로 페스티벌이 열렸고, 그 중심 무대는 바로 오타크링이었습니다.

 

행사 기간 동안 국내외 예술가 10명이 빈 16구의 벽면 10곳에 직접 벽화를 그렸고, 덕분에 오타크링은 그야말로 '거리 위 미술관’이 되었어요.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높이 솟은 건물 벽에 한가득 그려진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안엔 추상적인 표현도 있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도 있고, 그저 색의 조화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도 있어요.

calle libre

저는 평소 자주 다니던 거리인데, 벽화가 생긴 후로는 같은 길도 다시 보게 되더라고요. 색감 하나에도 눈길이 머무르고, 익숙했던 동네가 더 생기 있게 느껴졌어요. 마치 동네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변한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그 변화가 이 도시와 우리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느낌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 더 좋았어요.

 

Calle Libre를 통해 오타크링의 벽들은 그저 낡은 회색 면이 아니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어요.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담벼락이, 이제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사진을 찍게 만들고, 그림 안의 메시지를 생각하게 하죠.

calle libre

빈에 오시는 분들이라면 관광지 외에도 꼭 한 번쯤은 이런 로컬의 예술이 살아 있는 거리를 걸어보시길 추천드려요. 예술은 박물관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일상의 벽면에도 존재한다는 걸 오타크링이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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